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스토 뤼티 (문단 편집) === 전시대통령 === 핀란드는 겨울전쟁 때는 [[스웨덴]]에, 겨울전쟁 이후로는 [[나치 독일]]에 의존적이 되었는데, 친영파였던 뤼티에게는 마뜩치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발트해]]가 독일과 소련의 호수가 된 상황에서 영국과의 교역로를 잃은 핀란드는 독일이 손을 내밀어오자 다른 대안이 없었다. 1940년 8월, 뤼티는 독일과의 비밀 군사협력에 동의했다. 이때만 해도 독일과 싸우던 서방 연합국마저 독일이 소련을 침공할 경우 소련이 독일을 막아내지 못하리라 전망했었다. 뤼티 역시 그런 전망 하에 독일이 소련을 공격할 경우 겨울전쟁 때 잃은 땅을 회복할 가능성을 기대했다. 1941년 6월 [[바르바로사 작전]]이 개시되자 핀란드는 며칠간 형식적 중립을 취하다가 소련이 공습을 하자 소련에 선전포고했다. 영국은 핀란드를 [[추축국]]으로 규정하고 핀란드에 선전포고했다. 핀란드군은 겨울전쟁 때 빼앗긴 영토를 재확보할 뿐 아니라 원래 소련 땅이었던 동카리알라까지 정복해 군정청을 설립했다. 탄네르와 사민당은 동카리알라 공격에 반대했지만 뤼티는 탄네르를 어찌어찌 달래서 사민당의 내각 사퇴를 막았다.[* 사민당은 계속전쟁 개전 전부터 이 전쟁 문제로 크게 분열이 일어난 상태였다. 전쟁자체를 반대한 당내 좌파는 결국 전후 탈당하여 합법화된 공산당과 함께 [[핀란드 인민민주동맹|인민민주동맹]]을 설립한다.] 원래 뤼티는 칼리오가 다 못 채운 임기, 즉 1943년까지만 대통령을 지내기로 되어 있었지만 전쟁통에 차기 선거를 준비할 수 없자 1937년 다시 수정헌법을 통과시켜 뤼티가 재선출되었다. 1942년 겨울을 꺾으면서 뤼티와 만네르헤임은 독일이 승리할 가능성에 의구심을 품게 되었지만 이미 전쟁을 무르기에는 너무 늦었다. 1943년부터 핀란드는 독일의 망조를 눈치채고 손절매를 준비했다. 뤼티는 [[국민연합당]] 총재 [[에드빈 링코미에스]]와 협상하여 링코미에스 내각을 출범시켰고, 새 내각에서 파시즘 정당 [[라푸아 운동|애국인민운동]]은 강판되었다. 1944년 6월 9일, 소련의 대규모 반격([[비보르크-페트로자보드스크 공세]])가 개시되었고 6월 20일에는 핀란드 제4의 도시 [[비보르크|비푸리]]가 소련군의 손에 떨어졌다. 식량과 무기 탄약이 모두 떨어지며 상황이 악화일로였던 핀란드는 스웨덴을 통해 소련과 협상하려 했지만 소련은 무조건 항복이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텼다. 뤼티와 탄네르는 무조건 항복이라도 해야 한다고 했지만 만네르헤임과 링코미에스는 반대했다. 같은 때 독일의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가 예고도 없이 핀란드로 찾아왔다. 리벤트로프는 군사원조를 약속하며 소련과 싸움을 계속할 것을 요구했다. 이미 독일에 망조가 든 상황에서 뤼티는 결정권을 의회로 떠넘기고 싶었다. 하지만 만네르헤임은 뤼티 개인 명의로 리벤트로프와 합의하기를 종용했고, 뤼티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독일의 지원을 받은 핀란드군은 소련군을 탈리이한탈라 전투에서 막아내며 한숨 돌릴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